기사입력 2015.09.16 오후 7:15
최종수정 2015.09.16 오후 8:55


백화점·대형마트 주요 범죄 현황

지하주차장은 한적했다. 1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대형마트 지하 1층 주차장에는 시시티브이(CCTV) 10대 모두가 차가 다니는 통로만 비추고 있었다. 요금소는 상주하는 직원 없이 비어 있고 주차관리 요원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이곳에서 30대 여성이 납치될 뻔했다. 여성 전용 주차장에서 승용차에 타려던 여성을 한 남성이 흉기로 위협했지만 여성이 소리를 지르며 저항하자 차만 빼앗아 달아났다. 용의자는 지난 9일 충남 아산의 한 마트 지하주차장에서 30대 여성을 납치·살해한 뒤 차량 트렁크에 주검을 싣고 서울로 올라와 차량째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김일곤(48)씨다. 경찰은 강도·특수절도 등 전과 22범인 김씨를 현상금 1000만원에 지명수배한 상태다.

여성들의 안전 사각지대로 지목돼온 대형마트·백화점 주차장에 대한 공포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어두운 주차장에 겹겹이 주차된 차량은 여성을 노리는 범죄자들의 ‘엄폐물’이 되고 있지만, 대형마트 등은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주차장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

대형마트·백화점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대부분 홀로 쇼핑 나온 여성의 주변 경계가 소홀한 틈을 노린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 7일 저녁 한 대형마트 지하주차장에서 차에 타려는 여성을 납치하려 한 혐의로 김아무개(39)씨를 붙잡아 구속했다. 지난 6월에도 인천 남동구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여성이 차에 타는 순간 뒷좌석에 올라타 위협한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여성들은 장 보기가 두려울 정도라고 한다. 서울 관악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서아무개(31)씨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보통 밤 11시께 마트에 혼자 간다. 장을 보고 나오면 주차장에 사람이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인기척이 느껴지면 혹시나 해서 놀라게 된다”고 했다. 서울 중계동의 대형마트에서 만난 김아무개(50)씨는 “누군가 숨어 있다가 나타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을 느낀다.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매장 입구와 가까운 곳에 여성 전용 주차장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주차장 보안요원을 따로 두지 않거나 범죄 예방용 시시티브이를 제대로 갖추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매장 입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주차장 조명의 밝기를 일부러 낮추기도 한다. 남성들의 출입도 자유롭다. 여성만 이용하도록 한 주차장이 오히려 범죄에 용이한 장소가 되는 셈이다.

대형마트에서 주차관리 책임자로 일했던 이는 “주차장에는 대부분 고정형 시시티브이를 차량이 오가는 통로에 맞춰 둔다. 이 때문에 주차공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까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무인주차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주차장 상주 인력을 더 줄이는 추세”라고 했다. 서울의 한 창고형 할인매장 직원은 “유통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인건비 절감이다. 주차장 보안요원이나 시시티브이 감시 인원을 따로 두기가 어렵다”고 했다.

제도적 허점도 있다. 주차장에 범죄 예방용 비상벨·비상전화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규정은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대형마트와 백화점 주차장의 시설 점검을 주기적으로 하지만 불법 용도변경 여부나 신고한 규모로 주차장을 운영하는지를 확인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의 한 구청 주차시설 담당자는 “비상벨이나 비상전화를 구축하거나 안전요원을 고용했는지에 관해 법적 규정도 없고 확인할 의무도 없다”고 했다.

김성환 김규남 기자 hwany@hani.co.kr